올해는 교회 창립 7주년, 코비드-19 2년차로 한 해를 시작했습니다. 연 초에 우연히 영상물 하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영상의 내용은 20대 젊은 부부의 시골 살이었습니다.

도시 출신 어린 부부가 전남 시골 산속에서 폐가를 고쳐 밭을 일구며 살아갑니다. 수도를 놔준다는 이장님의 배려도 거절하고 일부러 불편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아기를 키우는데 편한 일회용 기저귀가 아닌, 천기저귀를 쓰는 특이한 부부였습니다. 적게 벌어도 적게 쓰면 된다는 생각으로 행복한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던 모습에 젊은 부부를 보며 여러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 불편한 삶을 선택했을까요? 그들은 환경운동을 통해서 만났다고 합니다. 어린 치기로 하는 환경운동이 아니라, 부부가 되어서도 그 삶을 실천하고자 결혼했습니다. 젊은 부부는 그들의 삶을 영상에 담았습니다. 그들만의 고립된 삶이 아닌, 같은 가치를 가진 이들과 정신과 삶 그리고 생활의 노하우를 공유하기 위해 SNS를 이용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부부의 삶을 응원하고 함께 해 주고 있습니다. 바보같이 순수한 그들의 삶을 보고 눈에 이슬이 맺혔습니다. 그 눈물 뒤에, 신학을 시작한 20대의 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7년 전 교회를 개척할 때의 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새숨 7년의 목회 회고를 하게 하신 것 중 지면상 몇 가지만 소개합니다.

“좋은 조건이 진리를 빛나게 하지는 않는다.”

고난이 진리를 빛나게 하는 것이지요. 상대적으로 안정된 사람과 재정은 마음의 안정감은 줄 수 있었으나,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고 진리 되신 우리 주님을 빛나게 하는 데는 부족했음을 깨닫습니다. 진리를 위해서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리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진실의 말은 짧고 거짓의 말은 긴 것이지요. 진리는 애매모호하지 않는 법입니다. 진리는 단순하고 명료합니다. 제 안에 진리에 대한 욕심과 인간적인 욕심이 공존했습니다. 그래서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고, 진리에는 생명을 걸자고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믿음에 있어서 안전한 중립지대는 없습니다. 그 중립지대는 차로에 위치하여 갓길보다 위험한 곳일 뿐입니다.

“사람들에게 좋은 목회? 하나님께 좋은 목회?”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 1:10]

저는 자칭 평화주의자였습니다. 저는 원수를 만들지 않는 것이 인생철학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에게 좋은 목회가 하나님께도 좋은 목회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했고, 사람들에게 좋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이 좋아 하시는 일은 많이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 사람의 종인 것을 깨닫습니다. 이제 저는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야겠습니다.

“영적 생활은 진리 전쟁이다.”

평화로운 신앙생활과 행복한 목회를 꿈꿔왔습니다. 그러나 영적 생활은 ‘진리 전쟁’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서도 힘이 없으면, 평화는 꿈일 뿐이지요. 영적인 평화와 승리 그리고 신앙생활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진리 전쟁’에서 승리해야합니다. 성도를 영적으로 무장시키는 것, 성도가 진리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세우는 것이 참된 목회임을 깨닫습니다.

지면의 한계로 내일 설교로 이어가겠습니다.

– 새숨교회 이영록 목사 드림 –